창세기 36장 — 에서의 족보에 담긴 약속과 섭리
요약
창세기 36장은 야곱의 형 에서, 곧 에돔의 족보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는 앞장에서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고 아버지 이삭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잠깐 방향을 틀어 언약의 후계자 야곱이 아니라 언약 밖으로 나간 에서의 자손들을 한 장 통째로 적습니다. 얼핏 지루한 이름의 나열 같지만, 이 족보는 하나님이 이삭을 통해 하신 약속과 그분의 감춰진 섭리를 증언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많은 민족의 조상" 약속과, 리브가가 받은 "두 민족이 네 태 안에 있다"는 신탁이 에돔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장의 짜임새는 크게 넷입니다. 에서의 아내와 아들들과 세일 산 이주(1~8절), 아들·손자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명단(9~19절), 세일 산 원주민 호리 족속의 족보(20~30절), 그리고 이스라엘에 왕이 서기 전 에돔을 다스린 왕들의 명단(31~43절)입니다.
장의 흐름
- 1~8절 — 에서의 세 아내와 다섯 아들, 그리고 재산이 너무 많아 야곱과 함께 살 수 없어 세일 산으로 옮겨 간 이주.
- 9~19절 — 에돔의 조상이 된 에서의 아들·손자 명단과, 그들에게서 나온 족장(알루핌)들의 이름.
- 20~30절 — 에돔 사람들이 오기 전 세일 산에 살던 원주민 호리 족속의 족보가 중간에 삽입됩니다.
- 31~43절 —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도 전에 에돔을 다스린 여덟 왕과, 지역·가문에 따라 다시 정리한 족장들의 명단.
단락별 해설
1~8절 — 에서의 아내들, 그리고 세일 산으로
"이것은 에서, 곧 에돔의 후손 내력입니다." (창세기 36장 1절)
첫 절에 "에서 곧 에돔"이라는 두 이름이 나란히 놓입니다(1절). '에돔'은 "붉다"는 뜻인데, 이 이름은 에서가 붉은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사건에서 왔습니다.[헨리·JFB] 한 번의 경솔한 선택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름이 된 셈입니다. 사람의 잘못은 이렇게 오래도록 수치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헨리] 에서는 종교의 굴레를 벗어던지듯 가나안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고(2절), 그런 부적합한 결합에서 나온 가문이 훗날 사납고 뻔뻔한 민족으로 악명 높았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JFB] 세 아내에게서 얻은 아들은 다섯뿐이었습니다(4절, 5절). 한 아내에게서 그보다 많은 자녀를 얻는 사람도 많은데, 하나님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 가문을 키우려는 사람을 종종 실망시키십니다.[헨리]
"그래서 에서는 세일 산지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에서는 곧 에돔입니다." (창세기 36장 8절)
에서가 세일 산으로 옮겨 간 표면적 이유는 재산이었습니다. 두 형제의 가축과 재물이 너무 많아 한 땅이 둘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7절). 그런데 여기서 성경이 보여 주려는 것은 그 이면의 섭리입니다. 에서는 교만하고 사나워서 스스로 동생에게 자리를 양보할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칼빈] 그의 세속적 재물이 크게 늘어난 바로 그 일이 오히려 그를 가나안에서 떠나게 만들었고, 그렇게 약속의 땅이 온전히 야곱에게만 남겨졌습니다.[JFB·칼빈] 악한 사람이 자기 뜻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이 이렇게 일어납니다.[칼빈] 게다가 세일 산은 하나님이 에서에게 "네가 살 곳"으로 정해 주신 땅이었습니다(8절).[헨리·JFB] 어떤 반대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반대하던 사람도 결국 그 말씀에 굴복하고 따르게 됩니다.[헨리]
9~19절 — 이름만 남은 족보, 그리고 족장들
"이것은 세일 산지에 사는 에돔 사람들의 조상 에서의 후손 내력입니다." (창세기 36장 9절)
에서의 아들과 손자들에 관해서는 오직 이름만 적혀 있고 그들의 역사는 없습니다(10절). 모세는 교회 밖 사람이 아니라 교회의 기록을 보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헨리] 명성 있는 사람을 배출하는 곳은 세일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것입니다. 이 족보는 삼사 대를 넘지 않고 곧 망각 속에 묻히지만, 약속된 씨가 나올 이스라엘의 족보만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길게 이어집니다.[헨리] 15절부터는 그 자손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명단입니다(15절). 여기서 말하는 족장은 영국 귀족 같은 높은 신분이 아니라, 오늘날 동양의 부족장이나 씨족장 같은 우두머리를 뜻합니다.[JFB] 아마 군사를 거느린 장수였을 텐데, 에서와 그 가문이 "칼로 살아가리라"는 말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헨리]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에서의 아들들이 이렇게 족장으로 위세를 떨칠 때, 야곱의 아들들은 아직 평범한 목자였습니다.[헨리] 세상이 주는 영예는 교회 밖에서 더 빨리 자라지만,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예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헨리]
20~30절 — 낮은 자리에서 시작한 사람
"시브온의 자녀는 이러합니다. 아야와 아나인데, 이 아나는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36장 24절)
20절부터는 에돔 사람들이 오기 전 세일 산에 살던 원주민 호리 족속의 족보가 중간에 끼어듭니다(20절). '호리'라는 이름은 "구멍·동굴"이라는 말에서 왔는데, 이들이 바위 동굴을 파고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풀핏] 에돔이 이 원주민과 뒤섞여 혼인 관계를 맺고 그 방식을 배웠다가 스스로를 부패시킨 것을 계속 돌아보게 하려는 기록이라고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헨리] 이 명단 가운데 특별히 한 사람이 눈에 띕니다. 아나는 아버지의 나귀를 치던 목동이었는데도 족장이라 불립니다(24절).[헨리] 높이 오르려는 사람은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며, 미천해 보이는 일이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습니다.[헨리]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유익을 발견합니다.[헨리] 그가 광야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는 견해가 갈립니다. 옛 학자들 중에는 이것을 짐승을 교배해 낸 일로 읽은 이들도 있었지만, 물이 귀한 광야에서 뜻밖에 만난 '온천'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풀핏]
31~43절 — 먼저 핀 꽃, 먼저 시드는 꽃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나오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린 왕들은 이러합니다." (창세기 36장 31절)
에돔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먼저 왕을 세웠습니다(31절). 하나님은 야곱에게 "왕들이 네 몸에서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정작 에서의 혈통이 야곱보다 먼저 왕족이 된 것입니다.[헨리] 이 왕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 세습이 아니라, 족장들이 그때그때 뽑아 세운 선출제였습니다(31절, 32절).[헨리·JFB·풀핏]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에돔 왕들의 위세를 전해 들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믿음에 큰 시험이 되었을 것입니다.[헨리] 눈에 보이는 번영에서 언약 백성이 뒤처지고 언약 밖 사람들이 앞서 나가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러나 성경이 붙이는 결론은 분명합니다. 갑자기 높아진 사람은 지붕 위에 난 풀처럼 뿌리가 없어 빨리 자라난 만큼 더 빨리 시들어 버립니다.[칼빈] "빨리 익으면 빨리 썩는다"는 것입니다.[헨리] 순간의 탁월함보다 땅에 뿌리 깊이 내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칼빈] 손에 세일 산을 쥔 에돔보다, 약속 안에 가나안을 둔 언약 백성이 더 복됩니다.[헨리]
연결된 말씀
- 창세기 25장 23절 — "두 민족이 네 태 안에 있다"는 신탁. 에돔이 한 민족을 이루어 이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이 장의 족보가 확인합니다.
- 창세기 27장 — 이삭이 에서에게 "칼로 살아가리라"고 준 축복. 36장의 족장·왕들의 명단이 그 말의 성취로 읽힙니다.
- 창세기 35장 11절 — 하나님이 야곱에게 "왕들이 네 몸에서 나올 것"이라 약속하신 말씀. 에돔의 이른 왕정(31절)과 대비되는 본문입니다.
- 신명기 2장 5절 — 세일 산을 에서에게 소유로 주셨다는 말씀. 에서의 이주(8절)가 섭리에서 나왔음을 뒷받침합니다.
- 시편 87편 — 명성 있는 자를 배출하는 곳은 시온이라는 노래. 이름만 남고 잊힌 에돔 족보(9~19절)의 대조로 인용됩니다.
마무리
창세기 36장은 지루한 이름의 목록 같지만, 언약 밖에서도 어김없이 이루어진 약속과 감춰진 섭리를 증언합니다. 에서의 번영은 오히려 야곱에게 길을 열어 주었고, 먼저 핀 에돔의 영화는 뿌리가 얕아 먼저 시들었습니다.[칼빈] 지금 눈앞에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친구가 나보다 더 빨리 앞서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시험 성적도, 인기도, 결과도 그쪽이 먼저 웃는 것 같은 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빨리 익은 것이 빨리 썩는다고 말합니다.[헨리]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사람은 뿌리를 깊이 내리며 천천히, 그러나 견고하게 자랍니다. 나는 눈에 보이는 빠른 결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인가요, 아니면 더뎌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를 내리기로 한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