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청소년어린이일반

마태복음 9장 — 병든 자를 찾아오신 의사와 목자 없는 양을 향한 긍휼

마태복음 9장 · 청소년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마태복음 9장은 예수님이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병을 고치시고 죄인을 부르시는 사역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입니다. 이 장을 관통하는 물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의 병만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죄의 병을 다루시고 죽음까지 다스리시는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앞부분에서는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먼저 선언하시고 몸을 일으키심으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증명하십니다. 이어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자신을 병든 자를 위해 온 의사로 소개하십니다. 뒤로 갈수록 이 권세는 더 넓어집니다. 죽은 소녀를 일으키시고 혈루증 여인을 낫게 하시며, 두 맹인의 눈을 열고 말 못 하는 사람의 입을 여십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진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추수할 일꾼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결국 이 장은 죄와 병과 죽음 앞에서 무력한 사람들을 향해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권세와 긍휼을 함께 보여 줍니다.

장의 흐름

  • 1~8절 —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나타내심.
  • 9~13절 — 마태를 부르시고 세리·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심.
  • 14~17절 — 금식 논쟁과 새 천·새 포도주 비유.
  • 18~26절 — 회당장의 딸을 살리시고 혈루증 여인을 고치심.
  • 27~31절 — 두 맹인의 눈을 여심.
  • 32~34절 —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치심과 바리새인의 신성모독.
  • 35~38절 — 목자 없는 양을 불쌍히 여기시며 추수의 일꾼을 구하라 하심.

단락별 해설

1~8절 — 죄가 먼저다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안심하여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마태복음 9장 2절)

친구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메고 왔습니다(2절). 그 수고 속에는 세 겹의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데려온 강한 믿음, 예수님의 왕진을 요구하지 않고 병자를 직접 모셔 온 겸손한 믿음, 그리고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실천하는 믿음입니다.[헨리]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아들아, 안심하여라"라고 부르십니다. 이 부름은 다정한 격려이며, 병자와 예수님 사이의 깊은 공감이 담긴 호칭입니다.[헨리·풀핏]

그런데 예수님은 몸을 고치기 전에 먼저 "네 죄가 용서받았다"라고 하십니다(2절). 순서가 뒤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풍은 죄라는 더 근본적인 병에서 나온 증상과 같아서, 예수님은 그 증상을 없애심으로 원질병인 죄를 다루는 능력을 증명하시려는 것입니다.[헨리] 죄 사함이 몸의 치유보다 먼저 오는 것은, 죄가 사람의 가장 깊은 병이기 때문입니다.[공통]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이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로 여겼습니다(3절). 하늘의 가장 큰 은혜의 말씀이 지옥의 가장 검은 낙인을 받는 역설이 벌어진 것입니다.[헨리] 남을 중상하려는 열심이 그들을 그런 사악한 결론으로 몰아갔습니다.[칼빈]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한다." 그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거라." (마태복음 9장 6절)

예수님은 자신을 "나"가 아니라 "인자"라고 부르십니다(6절). 이 표현은 다니엘서에서 하늘의 영원한 권세를 받는 "인자 같은 이"를 떠올리게 하며, 그 권세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행사되고 있음을 알리는 말입니다.[풀핏] 마침내 병자는 일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무리는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7~8절).

9~13절 — 병든 자에게 필요한 의사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그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다. (마태복음 9장 9절)

세관은 지나가는 물건마다 통행세를 매기던 자리였고, 약탈과 불의한 착취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습니다.[칼빈] 예수님이 그 자리에 앉은 마태를 부르신 것은 마태 안에 무슨 좋은 자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앞서 찾아오시는 은혜였습니다.[헨리] 놀랍게도 마태는 자신의 부르심을 아주 짧게만 기록하고, 자기가 베푼 잔치조차 겸손히 "그 집에서 음식을 잡수셨다"고만 적습니다.[헨리·JFB]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다." (마태복음 9장 13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직접 대들 용기가 없어 제자들에게 트집을 잡았습니다(11절).[헨리·JFB] 예수님은 자신을 의사에 비유하십니다. 죄는 영혼의 병이고 예수님은 그 영혼을 고치시는 위대한 의사이시기에, 병든 사람에게야말로 의사가 필요합니다(12절).[헨리] 여기서 인용하신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제사를 절대적으로 거부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형식적인 종교보다 사랑의 실천을 더 원하신다는 상대적 표현입니다.[칼빈] "회개하게 하려"는 말씀은 용서가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다시 부르려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칼빈]

14~17절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된다. 오히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마태복음 9장 17절)

요한의 제자들이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신랑의 비유로 답하십니다(14절). 신랑이 함께 있는 잔치의 시간에는 그 친구들이 슬퍼할 수 없으며,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그때에 금식하게 될 것입니다(15절).[헨리] 이어 예수님은 낡은 옷에 새 천을 대지 않고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16~17절). 이 비유는 예수님이 가져오신 새 시대가 옛 유대교의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춰질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공통] 여기서 낡았다는 것은 오래되었다는 뜻보다 약하고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어서, 예수님은 아직 어린 믿음의 약함을 고려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훈련을 무차별하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헨리·칼빈]

18~26절 — 죽음도 그분께는 잠이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딸아,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그 순간부터 나았다. (마태복음 9장 22절)

회당장은 겸손히 몸소 나아와 절하며 죽은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18절).[헨리] 그 길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20~21절). 이 옷술은 이스라엘 사람이 율법에 따라 겉옷 네 귀에 달아야 했던 청색·흰색 술이었습니다.[풀핏] 여인의 생각에는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낫는다는 약간의 오류나 미신이 섞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해의 약함을 견디시고 믿음의 신실함을 받아 주셨습니다.[헨리·칼빈·풀핏] "안심하여라"라는 말씀은 그녀의 흔들리는 믿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믿음을 칭찬하여 새 힘을 더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22절).[칼빈]

말씀하셨다. "물러가라. 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를 비웃었다. (마태복음 9장 24절)

회당장의 집에는 피리 부는 사람들과 통곡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23절). 이는 가장 가난한 집안이라도 초상 때 갖추던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풀핏] 예수님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신 말씀은 이 소녀에게만 참된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죽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부활의 소망을 동반한 짧은 잠임을 뜻합니다.[헨리] 율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조차 죽은 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능력을 가지셨기에 죽은 자를 만지셔도 오히려 그 소녀를 일으키셨습니다(25절).[헨리]

27~31절 —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그때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마태복음 9장 29절)

두 맹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따라왔습니다(27절). 이것은 맹인의 눈이 밝아지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JFB]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메시아를 알아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던 것입니다.[헨리] 예수님이 처음에 곧바로 응답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의 믿음과 인내를 시험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헨리·JFB] 마침내 눈을 열어 주셨을 때, 그 치유는 믿음의 크기에 비례한 대가가 아니라 믿음에 응답하여 주신 선물이었습니다(30절).[JFB]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에는 겸손의 본을 보이심,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경계, 자신의 안전, 세상적인 왕이 되리라는 오해를 막으심 같은 여러 이유가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헨리·풀핏]

32~34절 — 같은 일을 정반대로 해석하다

귀신이 쫓겨나자 말 못 하던 사람이 말을 하였다. 무리가 놀라며 말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마태복음 9장 33절)

말 못 하는 사람은 본래부터 말을 못했던 것이 아니라, 귀신 들린 뒤에 말하는 능력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32절).[JFB·칼빈] 여기에는 더 깊은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귀신이 영혼을 지배하면 사람은 기도와 찬양에서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헨리]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 입이 열렸고, 무리는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며 놀랐습니다(33절).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우두머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습니다(34절). 이것은 예수님의 기적을 악한 세력의 힘으로 돌리는 이론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며, 가장 극렬한 반대자들조차 기적 자체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했습니다.[JFB] 이 신성모독은 앞선 다툼들, 곧 죄 사함과 세리와의 교제와 금식을 둘러싼 시비보다 훨씬 더 악의적인 단계로 격화된 것입니다.[공통]

35~38절 — 목자 없는 양을 보시고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니,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9장 36절)

예수님은 모든 성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을 고치셨습니다(35절). 외딴 마을까지 찾아가신 것은 낮은 처지의 영혼도 귀히 여기신다는 표시입니다.[헨리] 그리고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36절). 여기서 "시달린다"는 말은 단순히 지쳤다는 뜻이 아니라 괴롭힘을 당하고 내던져져 쓰러져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JFB·풀핏]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그들을 방치했기에, 무리는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져 있었던 것입니다.[헨리·칼빈]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그분의 추수밭으로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여라." (마태복음 9장 37~38절)

예수님의 시선은 유대 땅을 넘어 온 세상의 밭으로 곧장 확장되었습니다.[JFB] 추수의 일꾼을 구하라는 이 말씀은 곧이어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는 다음 장의 서곡입니다.[공통] 그런데 예수님은 일꾼을 억지로 만들어 내라 하지 않으시고, 추수의 주인에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아무도 스스로 신실한 일꾼이 되지 못하며, 주님이 일으키시고 성령의 선물로 세워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칼빈]

연결된 말씀

  • 호세아 6장 —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의 원래 출처. 형식적인 종교보다 사랑의 실천을 원하신다는 근거로 13절에 인용됩니다.
  • 다니엘 7장 — 하늘의 영원한 권세를 받는 "인자 같은 이"의 환상. 6절에서 죄를 용서하는 "인자"의 권세가 이 예언과 이어집니다.
  • 이사야 35장 — 맹인의 눈이 밝아지리라는 예언. 27절에서 두 맹인이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는 믿음의 배경이 됩니다.
  • 레위기 21장 — 대제사장이 죽은 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도록 정한 규정. 25절에서 죽은 소녀를 만지신 예수님의 권능과 대조됩니다.
  • 누가복음 10장 — 칠십 명을 파송하실 때 다시 나오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는 말씀. 37~38절과 같은 부르심입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9장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한 장면씩 쌓아 보여 줍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을 부르시며, 병과 죽음을 다스리시고, 흩어진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 모든 사역의 뿌리에는 병든 자를 찾아오시는 의사의 마음이 있습니다.[공통] 예수님은 스스로 올 수 없는 중풍병자에게 먼저 다가가셨고, 미움받던 세관의 마태에게 먼저 손을 내미셨으며, 목자 없이 쓰러진 무리를 먼저 보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헨리] 나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겨 의사를 찾지 않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내 죄와 연약함을 알고 그분께 나아가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나는 흩어진 무리를 보시며 일꾼을 구하라 하신 그 부르심 앞에서, 오늘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