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 앞서간 조급함, 그래도 나를 보시는 하나님
요약
창세기는 성경의 첫 책이고,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16장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십 년을 산 뒤의 일입니다(3절). 하나님은 그동안 아브람에게 자손에 관한 약속을 여러 번 주셨습니다.[칼빈] 그런데 아내 사래는 여전히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1절). 사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대신, 이집트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아내로 주어 약속을 앞당기려 했습니다.[칼빈] 그 결정은 곧 집안에 큰 불화를 낳았습니다.[헨리] 임신한 하갈은 여주인을 업신여겼고, 사래는 아브람을 원망했으며, 모진 대우를 견디지 못한 하갈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망친 하갈을 광야에서 찾아오셨습니다. 이 장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조급하게 앞서갔지만, 하나님은 버림받은 여종의 고통까지 들으시고 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공통]
장의 흐름
- 1~3절 — 십 년째 이어진 불임 끝에, 사래가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아내로 줍니다.
- 4~6절 — 임신한 하갈이 사래를 업신여기고, 사래의 원망과 학대 끝에 하갈이 도망칩니다.
- 7~9절 — 여호와의 천사가 광야 샘 곁에서 하갈을 찾아, 여주인에게 돌아가 복종하라 명합니다.
- 10~12절 — 천사가 하갈에게 자손의 번성과, 태어날 아들 이스마엘의 성품을 예언합니다.
- 13~14절 — 하갈이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 부르고, 그 샘이 브엘라해로이로 불립니다.
- 15~16절 —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 그때 아브람은 여든여섯 살이었습니다.
단락별 해설
1~3절 — 앞당기려 한 마음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보세요, 여호와께서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그러니 내 여종에게 들어가십시오. 어쩌면 그녀를 통해 내가 자녀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들었다." (창세기 16장 2절)
사래가 자녀를 원한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복을 얻고자 하는 믿음의 열심이었습니다(2절). 문제는 방법이었습니다. 목표는 칭찬할 만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조급하게 벗어나 그 효과를 앞당기려 한 것은 가벼운 죄가 아니었습니다.[칼빈] 사래는 "여호와께서 막으셨다"라고 말하며 자녀 없음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했습니다(2절). 그렇게 인정한 것은 옳았지만, 인정한 그 짐을 스스로 벗으려 서둘렀다는 데 아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꾀보다 훨씬 더 우리의 유익과 명예를 도모합니다.[헨리] 마음이 어떤 위안에 지나치게 매달릴 때, 사람은 그릇된 방법에 쉽게 빠집니다. "믿는 자는 서두르지 아니한다"라는 말이 여기에 꼭 맞습니다.[헨리] 그렇게 하갈은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어졌지만, 이 자리는 본처와 달랐습니다. 가족에 대한 권한도, 자녀의 상속권도 없는 낮은 자리였습니다(3절).[JFB·풀핏] 원하는 일이 자꾸 늦어질 때, 나도 빠른 지름길로 결과를 앞당기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두름은 종종 조용히 문을 여는 유혹입니다.
4~6절 — 집안에 들어온 불화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내가 당하는 이 억울함은 당신 탓입니다.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는데, 그녀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자 나를 우습게 여깁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당신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16장 5절)
앞당기려던 계획은 곧 쓴 열매를 맺었습니다. 성급함의 벌이 지체 없이 따라와, 사래는 하갈의 멸시로 시험받고 아브람은 부당한 불평으로 괴로움을 당합니다.[칼빈]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자마자 여주인을 업신여겼습니다(4절).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은혜를 입으면 교만해져서 자기 자리를 잊는 일은 흔합니다.[헨리] 사래는 격분하여 아브람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5절).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의 불합리함은, 자기가 비난받을 일로 도리어 남을 나무라는 데 있습니다.[헨리] 그런데 아브람의 대답은 뜻밖에 온유했습니다(6절).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은 강한 고발에 온유한 대답으로 응해야 하니, "양보하는 것이 큰 잘못을 달랜다"라는 지혜 그대로입니다.[헨리] 결국 사래가 하갈을 모질게 다루자, 하갈은 여주인 앞에서 도망쳤습니다(6절). 잘되라고 시작한 일이 오히려 관계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별 과제든 친구 사이든, 의무의 길을 벗어날 때 따라오는 아픔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장은 조용히 보여 줍니다.[헨리]
7~9절 — 광야에서 찾아오신 분
"천사가 말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제 여주인 사래의 앞에서 도망치는 길입니다."" (창세기 16장 8절)
하갈은 광야로 무작정 도망쳤습니다. 오만함과 격정과 고집이 아니었다면, 홀로 험한 광야의 위험을 무릅쓸 리 없었습니다.[JFB] 그런데 바로 그 위험한 길목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하갈을 찾아냈습니다(7절). 천사의 때맞은 나타남이 없었다면 하갈은 죽었을 것입니다.[JFB] 죄악된 길에서 양심이나 섭리에 가로막히는 것은 사실 큰 은혜입니다.[헨리] 천사는 그녀를 "사래의 여종 하갈아"라고 불렀습니다(8절). 이 호칭은 그녀의 교만을 꺾고, 잊고 있던 종의 신분을 다시 일깨우는 부름이었습니다.[헨리·풀핏] 그리고 천사는 여주인에게 돌아가 복종하라고 명했습니다(9절). 자유는 은밀히 도망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해방을 통해서만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칼빈·풀핏] 힘든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도망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망치는 사람도 광야에서 찾아, 돌아갈 길을 알려 주시는 분입니다.
10~12절 — 들으시는 하나님, 이스마엘
"여호와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했다. "보아라, 네가 임신하였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16장 11절)
돌아가라는 명령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하갈이 낳을 자녀에게 복을 약속하여 그 명령의 어려움을 위로로 덜어 주었습니다(10절). 하나님은 강요가 아니라 부드러운 말과 약속으로 자발적인 복종을 초청하십니다.[칼빈] 태어날 아들의 이름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11절).[공통] 놀라운 것은, 하갈이 기도했다는 말이 본문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구할 때뿐 아니라,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도우실 때가 있습니다.[헨리·칼빈] 눈물은 때로 기도만큼 많은 것을 말합니다.[헨리] 이어 천사는 이스마엘이 "들나귀 같은 사람"이 되리라 예언했습니다(12절). 이 표현을 두고, 원수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제한된 은혜를 약속한 것으로 보는 주석도 있고, 거칠고 자유분방하며 호전적인 성품을 가리킨 것으로 보는 주석도 있습니다.[칼빈·JFB·풀핏]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언약의 중심에서 벗어난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그 후손을 지켜보신다는 사실입니다.
13~14절 — 나를 보시는 하나님
"하갈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당신은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불렀다.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나를 보시는 분을 뵙고도 살아 있는가?" 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16장 13절)
이 만남 뒤에 하갈은 하나님을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13절). 이것은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 나 하나까지 보고 계신다는, 자신을 돌아본 사람의 고백입니다.[헨리] "이것이 나에게? 이 광야에서도?"라는 놀람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먼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이 놀람이 보여 줍니다.[헨리] 전에 거칠고 완고했던 하갈이,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기 시작합니다.[칼빈] 그래서 그 샘은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렸습니다(14절). 이 우물 이름은 하갈이 가장 고통받던 시간에 하나님이 은혜롭게 나타나셨음을 감사히 기념한 것입니다.[JFB]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자리, 마음이 광야 같은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도 나를 보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이 이름의 위로입니다.
15~16절 — 순종의 자리로 돌아와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니, 아브람은 하갈이 낳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했다." (창세기 16장 15절)
하갈은 천사의 말대로 여주인에게 돌아왔고,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15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주는 위로를 함께 누립니다.[헨리] 도망치던 여종이 돌아와 아들을 품에 안았다는 이 조용한 결말이, 그녀의 순종을 보여 줍니다. 그때 아브람은 여든여섯 살이었습니다(16절). 나이가 정확히 기록된 것은, 이 모든 일이 한 사람의 실제 삶 속에서 일어난 사실임을 알려 줍니다.
연결된 말씀
- 갈라디아서 4장 — 하갈의 아들을 "육체를 따라 난" 여종의 아들로 읽어, 육적 자손이 영적 자손보다 먼저 태어나는 표상으로 인용하는 말씀입니다(15~16절 해설).
- 잠언 30장 — 낮은 자리의 사람이 은혜를 입고 도리어 교만해지는 모습을, 하갈이 임신 후 여주인을 업신여긴 일(4절)과 잇는 말씀입니다.
- 잠언 15장 —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쉬게 한다"는 지혜. 아브람이 온유한 대답으로 다툼을 가라앉힌 일(6절)이 가리키는 본문입니다.
- 이사야 65장 — 하나님이 구하지 않는 자에게 먼저 자신을 보이셨다는 말씀. 하갈을 먼저 찾아오신 은혜(13절)와 이어집니다.
- 창세기 25장 — 이스마엘 자손이 "수르로 가는 길", 곧 이집트 앞에서 산다는 기록. 하갈의 도망 방향(7절)과 예언(12절)이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마무리
창세기 16장은 사람의 조급함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사래와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갔고, 그 결과 집안은 불화로 얼룩졌습니다.[공통] 그러나 하나님은 도망친 여종을 광야에서 찾아, 그 고통을 들으시고 보셨습니다.[공통] 원하는 일이 늦어질 때, 나도 내 힘으로 결과를 앞당기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성적이든 관계든, 앞서 서두르다가 오히려 더 큰 아픔을 만든 경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갈을 찾아오신 그 하나님은 지금 나의 광야도 보고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내 힘으로 앞당기려 서두르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것 같은 자리에서도,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나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