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장 — 나그네가 값 치른 한 조각 무덤
요약
창세기 23장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떠나보내는 장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2장부터 이어져 왔고, 이제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사라는 백이십칠 세에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고, 아브라함은 그 곁에서 애통하며 울었습니다(1절, 2절). 그런데 이 장의 절반 이상은 눈물이 아니라 무덤을 사는 흥정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나그네요 이방 사람이라 밝히며 헷 사람들에게 매장지를 청했고(4절), 에브론에게서 막벨라 굴을 은 사백 세겔에 사들였습니다(16절). 옛 주석가 한 사람은 모세가 사라의 죽음은 단 한 마디로 적으면서 장례는 길게 기록한 점에 주목합니다.[칼빈] 이 장이 말하려는 핵심은, 한 조각 무덤을 사는 이 조용한 거래가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과 부활을 믿는 믿음의 표시라는 것입니다.[공통]
장의 흐름
- 1~2절 — 사라가 백이십칠 세에 헤브론에서 죽고, 아브라함이 그 곁에서 애통하며 울었습니다.
- 3~6절 — 아브라함이 자신을 나그네라 밝히며 매장지를 청하고, 헷 사람들이 너그럽게 응답합니다.
- 7~16절 — 아브라함이 절하며 감사하고, 에브론의 밭과 굴을 값을 온전히 치르고 사들입니다.
- 17~20절 — 밭과 굴이 모든 사람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고, 사라가 그곳에 묻힙니다.
단락별 해설
1~2절 —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눈물
"사라는 백이십칠 년을 살았으니, 이것이 사라가 누린 생애의 햇수였다." (창세기 23장 1절)
사라는 백이십칠 세를 채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1절). 아무리 오래 사는 사람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헨리] 하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도 죽음의 손길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헨리] 사라는 성경에서 나이와 죽음과 장사가 모두 기록된 유일한 여성입니다.[공통] 아마도 히브리 민족의 존경받는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JFB] 흥미롭게도 모세는 사라의 죽음은 한 마디로 적으면서 장례는 여러 말로 길게 기록했습니다.[칼빈] 표현으로 다 말하기보다 읽는 사람이 더 많이 헤아리도록 남겨 둔 것 같습니다.[칼빈]
"사라가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으니, 아브라함이 들어가 사라를 위하여 애통하며 슬피 울었다." (창세기 23장 2절)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 앞에서 "애통하며" 또 "슬피 울었다"고 기록됩니다(2절). 이 두 낱말은 겉치레가 아닌 진실한 슬픔을 보여 줍니다.[헨리] 앞의 말은 땅에 앉아 가슴을 치는 애도이고, 뒤의 말은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더 조용한 눈물입니다.[풀핏] 슬픔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마음의 강인함이 아니라 오히려 무감각입니다.[칼빈] 그러나 아브라함은 속으로 울면서도 그 슬픔을 절제했습니다.[칼빈] 부활의 가르침이 흐릿하던 시절에도 이렇게 절제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위로받는 오늘 우리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칼빈] 눈물은 떠난 이에게 드리는 마땅한 예물이지만, 소망 없는 사람처럼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헨리] 시험이나 관계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도, 슬픔을 억지로 감추는 것과 절제하는 것은 다릅니다.
3~6절 — 나그네의 청원과 너그러운 응답
"나는 여러분 가운데 머무는 나그네요 이방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내가 묘지로 쓸 땅을 얻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 죽은 아내를 내 눈앞에서 옮겨 장사하게 해 주십시오." (창세기 23장 4절)
아브라함은 자신을 "나그네요 이방 사람"이라 밝히며 매장지를 청했습니다(4절). 여기서 '나그네'는 자기 나라 밖에 사는 사람을, '이방 사람'은 그 땅에 살아도 정식 주민은 못 된 사람을 뜻합니다.[풀핏] 가나안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이렇게 고백한 것은, 그가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을 바라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풀핏] 아브라함이 이 땅에 무덤 하나 미리 두지 못한 것은 그의 게으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헨리] 가까운 이의 죽음은 이 세상에 우리의 진짜 집이 없음을 일깨워 줍니다.[헨리]
"내 주여, 우리 말을 들으십시오. 당신은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지도자이십니다. 우리의 가장 좋은 무덤에 당신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십시오." (창세기 23장 6절)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지도자"라 부르며 가장 좋은 무덤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6절). 이 표현은 "하나님의 산들"이 큰 산을 뜻하듯 "매우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식 말투이기도 합니다.[JFB·풀핏] 한편 여기서 헷 사람들 안에 있는 경건의 어떤 씨를 읽어 내는 주석도 있습니다.[칼빈] 자신을 나그네로 낮춘 아브라함이 도리어 높임을 받은 것입니다.[헨리] 놀랍게도 이 가나안 사람들의 너그러움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면서도 인색한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합니다.[헨리]
7~16절 — 예의 있는 협상과 온전한 값
"아닙니다,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안에 있는 굴도 당신에게 드립니다. 내 백성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당신에게 드리니, 당신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십시오." (창세기 23장 11절)
큰 인물이자 노인이며 애도 중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일어나 몸을 굽혀 절했습니다(7절). 동방에서 사고파는 관례는 앉아서 하는 것이었으니, 일어나 절한 것은 깍듯한 경의의 표시였습니다.[풀핏] 참된 신앙은 이렇게 좋은 예절을 가르칩니다.[헨리] 밭 주인 에브론은 밭과 굴을 통째로 거저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11절). 그러나 그 너그러움은 겉모습에 가까웠습니다.[JFB] 아브라함은 굴만 원했는데 에브론은 밭까지 묶어 말했고, 선물이라면서도 속으로는 그만한 값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JFB]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은 사백 세겔 값의 땅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당신의 죽은 아내를 장사하십시오." (창세기 23장 15절)
에브론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라고 한 것은 아랍식 정중함의 흔한 표현일 뿐, 그 무관심한 태도는 순전한 가식이었습니다.[JFB] 아브라함은 그 속내를 알았기에 굳이 값을 온전히 치르기로 했습니다.[JFB] 그가 값을 다 치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헨리] 하나는 공의입니다. 은금이 넉넉했으므로 남의 너그러움에 편승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헨리] 다른 하나는 분별입니다. 훗날 에브론이 자기가 아브라함을 부요하게 했다며 빈정대거나, 상속인이 소유권을 문제 삼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헨리] 칼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결국 하나님이 쫓아내실 그 땅 사람들에게서 아무 대가 없는 소유도 받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칼빈] 아브라함의 시선은 늘 지금의 땅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칼빈]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듣고, 그가 헷 사람들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은을 달아 주었으니, 곧 상인들이 통용하는 표준에 따라 은 사백 세겔이었다." (창세기 23장 16절)
아브라함은 지체 없이, 깎지 않고, 상인의 표준대로 값을 온전히 달아 주었습니다(16절). 그런데 '세겔'은 동전이 아니라 "무게를 재다"라는 말에서 나온 무게 단위입니다.[풀핏] 그래서 은을 개수로 세지 않고 저울로 달아 값을 치렀습니다.[JFB·풀핏]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가나안 온 땅이 약속으로는 이미 아브라함의 것이었지만, 그는 필요한 땅을 사고 값을 치렀습니다.[헨리] 은혜가 곧 소유권의 근거가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헨리] 친구가 선뜻 무언가를 내줄 때에도, 정당한 값을 치르는 편이 관계를 오래 지킵니다.
17~20절 — 공개된 확정과 사라의 장례
"그 후에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의 굴에 장사하였으니, 그곳은 곧 헤브론이다." (창세기 23장 19절)
밭과 굴과 경계 안 나무까지, 모든 것이 헷 사람들과 성문을 드나든 모든 사람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습니다(17절, 18절). 이렇게 거래가 온 이웃 앞에 공개된 것은 공정하고 정직한 계약의 모범입니다.[헨리·풀핏] 사기성 거래는 빛을 싫어해 몰래 이루어지기를 좋아합니다.[헨리] 이 막벨라, 곧 "이중 굴"이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소유한 땅이었습니다.[JFB·헨리] 약속으로는 온 땅이 그의 후손 것이었지만, 정작 그가 손에 쥔 것은 이 한 조각 무덤뿐이었습니다.[헨리] 그런데 이 작은 무덤을 이토록 정성껏 마련한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의 표시였습니다.[공통] 몸이 영영 버려질 것이라면 무엇 하러 그렇게까지 돌보겠습니까.[헨리] 하나님의 약속은 죽음으로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그때부터 더 꽃피기 시작했습니다.[칼빈]
연결된 말씀
- 창세기 18장 — 사라가 스스로를 노인이라 부른 장. 오래 산 사람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는 1절 해설이 기대는 본문입니다.
- 사도행전 7장 —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발 디딜 땅조차 얻지 못했다는 스데반의 증언. 매장지를 미리 두지 못한 것이 섭리였음을 가리킵니다(4절).
- 히브리서 11장 —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고백했다는 말씀. 자신을 나그네라 밝힌 4절이 가리키는 본문입니다.
- 이사야 51장 — 사라를 조상으로 불러 세우는 말씀. 사라를 믿는 자의 어머니로 읽는 근거입니다.
- 베드로전서 3장 — 사라를 믿음의 여성의 본보기로 드는 말씀. 이 장이 기리는 사라의 자리를 이어 줍니다.
마무리
창세기 23장은 눈물의 장이면서 동시에 한 조각 무덤을 사는 거래의 장입니다. 아브라함은 슬픔을 절제했고, 남의 호의에 편승하지 않고 값을 온전히 치렀으며, 모든 것을 사람들 앞에 투명하게 확정했습니다.[공통] 그리고 그 작은 무덤은 이 땅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 곧 부활과 약속을 향한 그의 시선을 담고 있었습니다.[공통] 우리도 이별의 슬픔 앞에 설 때가 있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정직하게 값을 치러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을 나그네로 살면서도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풀핏] 나는 지금 눈앞의 이익과 편함에만 시선을 두고 있나요,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더 멀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