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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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 — 이름을 내려던 탑과 아브라함으로 이어진 계보

창세기 11장 · 일반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창세기 11장은 홍수 이후의 인류가 다시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과, 그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에게로 이어지는 계보를 함께 보여 줍니다. 홍수가 그친 뒤 온 땅은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었고, 사람들은 시날 평야에 모여 성읍과 탑을 쌓아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 온 땅에 흩으셨고, 그곳의 이름은 바벨이라 불렸습니다.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1~9절)은 바벨에서의 흩어짐이고, 뒷부분(10~32절)은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족보입니다.[헨리] 흩어진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은 셈의 계보를 따라 데라와 아브라함에 이르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장의 흐름

  • 1~4절 — 시날 평야 정착. 벽돌과 역청으로 성읍과 탑을 쌓아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막으려는 계획.
  • 5~9절 — 하나님의 심판. 여호와께서 내려오사 살피시고, 언어를 뒤섞어 흩으심, 바벨이라는 이름의 유래.
  • 10~26절 — 셈의 족보. 셈에서 데라까지 열 대의 조상과 그들의 출생과 수명.
  • 27~32절 — 데라의 족보. 아브람·나홀·하란, 하란의 요절, 사래의 불임,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정착.

단락별 해설

1~4절 — 이름을 내려는 사람들

"또 그들이 말하였다. "자, 우리를 위하여 성읍과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우고, 우리의 이름을 떨치자. 그래야 우리가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창세기 11장 4절)

홍수 이후 각 부족은 방향을 정해 흩어지도록 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은 멀리 흩어지기를 꺼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노아보다 자신들이 더 현명하다고 여겼습니다.[헨리] 이 계획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 둘 있었으니, 하나는 노아에게서 물려받은 하나의 언어였고, 다른 하나는 정착에 매우 편리한 시날의 넓고 비옥한 평야였습니다(1~2절).[헨리] 공통 언어라는 강한 유대로 묶인 무리는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에도 흩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JFB] 그들은 서로 "자, 벽돌을 만들자", "자, 성읍을 건축하자" 하며 격려하였는데(3~4절), 이는 죄인들이 서로 악을 부추기는 모습이었습니다.[헨리] 그 지역에는 돌도 회반죽도 없었으나, 그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그 결핍을 메웠습니다(3절). 결심이 굳은 자는 방법을 찾아내는 법입니다.[헨리·JFB·칼빈·풀핏]

탑을 세우려는 데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늘에 닿으려는 높이로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 이름을 떨쳐 명성을 얻는 것, 그리고 흩어짐을 막는 것이었습니다.[헨리] 그러나 정작 이 건축자들의 이름은 역사에 단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이름을 내려던 목적조차 실패하였습니다.[헨리·풀핏] 도성과 탑을 세우는 일 자체가 죄는 아니었으나, 이를 통해 하나님이 명하신 분산을 막아 하늘의 뜻을 꺾으려 한 것이 어리석고 악한 일이었습니다.[JFB] 탑이 장차 있을 홍수를 피할 피난처였다는 추측은 근거가 없으며, 본문이 뜻하는 바는 오직 그들의 미친 야망과 하나님을 향한 교만한 경멸입니다.[칼빈]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은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창세기 9장 1절).[풀핏] 성도는 함께 모여 이름을 내는 일보다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헨리]

5~9절 — 내려오사 흩으신 하나님

"자, 우리가 내려가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세기 11장 7절)

"여호와께서 내려오사" 보셨다는 것은 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한 말입니다(5절). 이는 심판에 앞서 충분히 살피시는 공정하심과, 낮은 세상 일에도 친히 임하시는 겸손하심을 함께 보여 줍니다.[헨리] 하나님은 잠시 모른 척하시다가 갑자기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자신의 심판을 더 결정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칼빈] "보라, 그들은 한 백성이며 모두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말씀은 그들의 성급한 확신을 향한 억제된 아이러니입니다(6절).[칼빈] 그들의 연합 자체가 흩어야 할 이유였습니다. 하나로 머문다면 땅의 많은 부분이 비고, 권력과 악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하나님의 작은 무리가 삼켜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들이 하려고 마음먹은 일은 무엇이든 못 막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신적 개입이 없었다면 그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었으리라는 인정입니다(6절).[JFB]

"우리가 내려가자"는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께 하신 말씀입니다(7절).[헨리] 사람이 죄를 지으려 서로 격려하듯, 하나님도 보응하시려 스스로 격려하시는 표현입니다.[헨리] 이 복수형은 사람 창조 때의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와 일치하여 삼위가 한 신적 본질 안에 계심을 증언합니다(창세기 1장 26절).[칼빈·풀핏] 형벌에는 많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으니,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는 것만으로 그들은 건축을 그치고 흩어졌습니다(8절).[칼빈] 이 심판은 자비이기도 하였습니다. 즉각적 진멸이 아니라 흩으심에 그치셨기 때문입니다.[헨리] 언어의 혼잡은 참 교회와의 소통을 끊었고, 오늘날 언어가 갈린 모든 불편은 바벨 반역의 대가입니다.[헨리] 그러나 훗날 사도들에게 주신 방언의 은사는 이 흩으심과 반대로 흩어진 자들을 다시 모으는 기적이었습니다(사도행전 2장).[공통] 바벨이라는 이름은 "혼잡하게 하다"는 뜻에서 왔으며(9절), 그들이 원하던 이름과 정반대로 후대에게 영원한 수치의 낙인이 되었습니다.[칼빈·풀핏] 성도는 사람의 연합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 반드시 무너짐을 기억하고, 흩으심 속에도 다시 모으시는 자비를 신뢰해야 합니다.[공통]

10~26절 —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

"셈의 계보는 이러하다. 셈은 백 살에, 홍수가 그친 지 이 년 후에 아르박삿을 낳았다." (창세기 11장 10절)

바벨의 흩어짐에 이어 성경은 셈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이 족보는 아브라함에게서, 나아가 그리스도에게서 끝나는 족보입니다. 창세기 5장과 이 본문과 마태복음 1장을 합치면 아담부터 그리스도까지 완전한 계보가 됩니다.[헨리] 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르우·스룩·나홀·데라로 이어지는 이름들은 아담부터 아브람까지의 연대기적 윤곽을 완성합니다.[풀핏] 조상들의 수명이 점차 줄어든 것은 자연의 쇠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읽어야 합니다. 택하신 자를 위하여 날이 줄었고, 삶이 악하기에 짧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헨리]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 에벨이 홍수 후 태어난 사람 중 가장 오래 산 것은 아마도 그의 경건함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입니다.[헨리]

하나님이 셈의 족보를 남기신 것은 셈 가문의 존엄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무조건적 선택 때문이었습니다.[칼빈] 셈의 자손 가운데 데라와 나홀을 포함한 상당수가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서 벗어났으나(여호수아 24장 2절), 하나님은 그 가운데 소수를 보존하셨습니다.[칼빈] 노아와 셈이 가장 용감하게 싸웠어도 세상에 만연한 불경건을 막지 못하였다면, 오늘날 세상의 방종한 욕망이 건전한 교훈과 권면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에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칼빈] 성도는 이름의 나열 속에서도 택하신 자를 끝까지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읽어야 합니다.[칼빈]

27~32절 — 데라의 족보와 떠남

"데라는 자기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곧 자기 손자인 롯과, 자기 며느리 곧 아들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창세기 11장 31절)

데라의 족보는 아브람·나홀·하란 삼형제로 시작합니다(27절). 하란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사실은, 죽음이 나이 순서를 따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28절).[헨리] 아브람이 가장 먼저 언급되지만 그가 장남은 아니었습니다. 데라가 205세에 죽었고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75세였다는 것을 종합하면(사도행전 7장 4절), 아브람은 데라의 130년째 해에 태어났습니다.[헨리·칼빈·풀핏] 아브람이 먼저 기록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영적 탁월성 때문이며, 하나님의 선택에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헨리·풀핏] 아브람이 태어난 갈대아 우르는 우상을 숭배하던 곳이었으니, 데라와 그 가족도 다른 주민과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에 물들어 있었습니다.[JFB]

사래가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다는 사실이 굳이 밝혀진 것은, 훗날 이삭의 출생이 얼마나 비범한 기적이었는지를 미리 보이기 위함입니다(30절).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낮추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칼빈] 데라가 가족을 데리고 우르를 떠난 일을 두고, 아브람만이 신적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데라는 아버지의 권위 때문에 그를 데려간 것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칼빈] 한편 데라의 출발 동기를 순전한 인간적 의지로, 혹은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로, 혹은 아들의 소명을 알고 함께하려는 소망으로 설명하는 등 견해가 갈리기도 합니다.[풀핏] 하란은 우르에서 이틀 여정 거리로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편리한 길목이었습니다(31절).[JFB]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에 이르지 못하고 하란에 머물렀는데, 이는 데라의 노령 때문이었을 것입니다(31~32절).[헨리] 많은 이들이 하란까지는 이르지만 가나안에는 이르지 못하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으나 끝내 들어가지 못합니다.[헨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이르고도 끝내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부르심을 따라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헨리]

연결된 말씀

  • 창세기 9장 1절 —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으로, 바벨 사람들이 흩어짐을 면하려 저항한 대상으로 지시됩니다(4절).
  • 창세기 1장 26절 —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는 말씀으로, 7절의 "우리가 내려가자"와 병행하여 삼위의 신적 협의를 보여 주는 근거입니다.
  • 사도행전 2장 — 방언의 은사가 바벨의 흩으심과 반대로 흩어진 자들을 다시 모으는 기적임을 밝히는 말씀으로, 주석들이 함께 인용합니다.
  • 마태복음 1장 — 이 족보가 아담부터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완전한 계보의 한 부분임을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10~26절).
  • 사도행전 7장 4절 — 데라 사후 아브람이 하란을 떠난 사실로, 아브람이 데라의 130년째 해에 태어났음을 계산하는 근거입니다(26절).
  • 여호수아 24장 2절 — 데라와 나홀이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서 벗어나 우상을 섬겼음을 밝히는 말씀입니다(10~26절).

마무리

창세기 11장의 중심은 이름을 내려는 사람의 교만이 흩으심으로 심판받고, 그 흩어진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계보를 택하여 보존하시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명하신 분산을 거슬러 성읍과 탑으로 이름을 세우려 하였으나, 그 심판마저 흩으심에 그치고 훗날 다시 모으시는 자비로 이어졌습니다. 족보의 이름들은 무심히 지나갈 목록이 아니라, 택하신 자를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이름을 높이는 일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서로 선을 격려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또한 하란에 머문 데라처럼 부르심의 문턱에서 주저앉지 말고, 믿음의 사람은 부르심을 따라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